데미안은 계속해서 읽었던 책이다.

작년에도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또 다른 감동을 느꼈던 책이다. 인생이란 뭘까? 항상 생각하지만 답답한 나에게 그래도 어렴풋이 이런 것이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했었구나!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포스팅을 하면서도 많은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 책이고 속뜻이 많아서 알면 알수록 더 공부할 것이 많은 책이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나오는데 이름의 속 뜻이 이렇다고 한다.

sinclair(싱클레어)=saint(성스럽다)+clair(환하다)

demian(데미안) = 독일어 demon(악마)

작가인 헤르만헤세가 구스타프 융과 친한 친구였는데 헤르만헤세가 평화주의자이지만 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고통과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융이 상담을 해줄 때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 훈련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을 타자화 하기 위해 내면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선과 악을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아브락사스'이다. 알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에게로 날아가는 새가 되는데 결국 선과 악은 공존하는 것이고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혼돈과 고민을 계속해서 겪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자신속에서 이상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추상적이기도하고 여러가지로 해석되는 구문도 많아서 어렵기는 하지만 중간중간에서 얻을 수 있는 명구절로 여러번읽어도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데미안 줄거리]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다. 싱클레어가 주인공인데 같은 반 친구인 데미안과 함께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성장을 하면서 인생을 마주하는 스토리이다. 금지된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던 열 살 무렵의 에밀 싱클레어는 동네의 불량배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트집을 잡혀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크로머는 계속해서 싱클레어의 고민이 된다.크로머와 부딪히면 부딪힐 수록 학교생활이 어려울만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싱클레어의 학교에 새로 전학을 온 데미안은 크로머와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싱클레어가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게 된다. 같은 친구면서도 훨씬 더 어른스러우면서도 도움을 주는 데미안을 만남으로서 더 깨어나게 된다. 이전에 삶은 크로머에게서 벗어나는 것 뿐이였는데 더 많은 것을 보게 해준 것이다.고등학교에 진학한 싱클레어는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며 방황하지만,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이상으로 삼아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를 그리던 싱클레어는 자신이 데미안의 얼굴을 그렸음을 깨닫고 그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 후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는 우연히 데미안과 재회하게 되는데,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얼마 후 전쟁이 터지자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한 채 야전병원에서 재회한다. 데미안은 스스로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지고, 싱클레어는 거울을 보고 이제 자신의 모습이 데미안을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데미안과 계속해서 붙어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데미안을 묻어두고 닮아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싱클레어다. 자신만의 이상을 찾아갔던 것을 마지막에 발견하면서 여운이 크게 남는다. 





[데미안 명대사]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알을 깨고 나와서 태어나야한다는 것. 지금 나는 나의 세계에 갇혀있지만 언제든지 내 의지를 가지고 깨고 나온다면 새로 태어날 수 있다. 아브락사스에 대한 해석은 굉장히 심오하게까지 되어있다. 단순하게는 신적인 요소와 악마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죄가없으며 정상적이게 된다면 아브락사스가 떠나간다고 적힌 구절이 책에서 나오는데 아마도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아브락사스가 관여한다는 것 같다. 추상적인 존재라 많은 해석이 있는 대목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내가 지금의 나를 감싸고 있는 세계를 부숴야지 태어날 수 있다는 것. 쉽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깨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고대의 그 교파의 신비적인 단체의 논법을 합리주의적인 관찰의 입장에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소박하게 상상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가진 과학과 같은 것은 고대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신 대단히 고도로 발전한 철학적 신비적인 진리에 대한 연구가 성행했다. 거기서부터 부분적으로는 분명히 사기와 범죄 행위로 나가기까지 한 마술과 유희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 마술 역시 고귀한 내력과 깊은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가 앞에서 예를 든 아프락사스의 설도 그렇다. 이 이름은 희랍의 주문과 관계가 있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대개는 야만 민족이 가지고 있는 어떤 악마의 이름이라고 왕왕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이 이름을 대략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관계를 지닌 일종의 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브락사스에 대해서 또한번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읽어보아도 아브락사스가 어떤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나는 몰랐어. 아니면 실은 알았던 것인지도 몰라. 언젠가 네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어, 데미안. 그런데 난 그 초상이 나하고도 닮았다는 사실에 놀랐었지. 그게 그 표적이었을까?” 

내가 결국 너로 닮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가 바라는 너의 모습이 내안에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데미안에는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려는 것, 난 그것을 살아 보려 했을 뿐이다. 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 "

왜일까? 왜그렇게 힘들까. 나는 왜 이렇게 있는 그대로 살아보려고해도 힘든일이 많을까?

하지만 나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세계는 험난하다. 세계를 바꾸는 것 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훨씬 더 쉽고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결국 내가 생각했던 나는 사라져있다. 나도 내안에서 데미안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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