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던 곳은 소나무가 우거진 기분 좋은 언덕배기였는데 나무들 사이로 호수가 보였고 어린 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숲속의 작은 빈터도 보였다. 호수의 얼음은 군데군데 녹아 물이 보이는 곳도 있었으나 아직 다 녹지는 않았으며, 온통 거무스레한 색깔을 하고 물기에 젖어있었다.
내가 낮에 그 곳에서 일하노라면 때로는 눈발이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집으러 돌아가려고 철로 변으로 나오면 선로 옆의 노란 모래는 아지랑이 속이서 번쩍이며 끝없이 펼쳐져잇고 선로 자체도 봄날의 햇빛을 받아내고 빛나고 있었다.
종달새와 피비새와 그 밖의 새들이 사람들과 함께 또 한 해를 보내고 보내려고 어느새인지 와서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흔쾌한 봄날들이 이어지면서 겨울 동안의 인간의 불만은 대지와 함께 녿아 갔으며 동면하고 있던 생명은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어느날 도끼자루가 빠져서 호두나무의 푸른 가지를 잘라와 돌로 쐐기를 박았다. 그러고는 자루가 다시 빠지지 않도록 물에 불리려고 호수의 얼음 구멍에 담갔는데, 그때 줄무늬 뱀 한 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뱀은 내가 그곳에 있는동안, 그러니까 15분 이상을 호수 바닥에 가만히 있었지만 별 불편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그 뱀이 아직도 동면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현재의 비천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약 참다운 봄의 기운이 자신을 깨운 것을 느낀다면 그들도 반드시 일어나 높고 영묘한 생활을 지향할 것이다.
나는 전에 서리가 내린 길을 걷다가 뱀을 여러번 만났는데 이 뱀은 추위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채 햇빛이 자신을 녹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초하룻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호수의 얼음이 녹았다. 그날 아침은 매우 짙은 안개가 끼었는데 외톨이가 된 기러기 한 마리가 더듬듯이 호수 위를 날면서 길을 잃은 것 처럼 또는 안개의 정령이라도 된 것 처럼 끼룩끼룩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며칠동안 나는 작은 도끼 한자루만 가지고 나무를 자르고 깎고 기둥과 서까래를 다듬었다. 남에게 전할만핟 생각이나 학자다운 생각은 별로 하지않고 홀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말하지만
보라! 그것들은 날개가 돋쳐 날아가버렸다.
모든 예술과 과학이. 그리거 무수한 발명품들이. 바람이 부는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그것뿐"
나는 하루종일 숲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항상 점심으로 버터바른 빵을 싸 가지고 갔다. 점심때에는 내가 베어낸 푸른 소나무 가지들 사이에 앉아 빵을 쌌던 신문을 읽었다. 손에 송진이 잔뜩 묻었으므로 빵에 소너무 향기가 스며들었다. 집을 다 지을 무렵 나는 소나무의 원수라기보다는 그 친구가 되었다. 왜냐면 소나무를 여러 그루 베긴했지만 이 나무를 아주 잘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숲 속을 거닐던 사람이 나의 나무조각들을 사이에 두고 즐거운 한담을 나누었다. 일을 서두르지 않고 공을 들여했기 때문에 4월 중순경이 되어서야 뼈대가 짜여 세울 준비가 되었다. 나는 이보다 앞서 판자를 쓸 생각으로 피치버그행 철도 노선에서 일하는 제임스 콜린스라는 아일랜드 사람의 판잣집울 사놓았었다. 콜린스의 판잣집은 꽤 쓸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그는 집에 없었다. 나는 집 바깥을 한번 둘러보았다. 창문이 높고도 깊숙히 붙은 까닭에 처음에 집안에서는 내가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자그마한 집은 오두막식으로 올린 뾰족함 지붕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밖에는 이렇다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않았는데 그것은 집주위를 돌아가며 퇴비더미처럼 흙을 5피트정도로 쌓아 놓았기 때문이다. 햇빛에 말라 꽤 휘긴했지만 지붕이 제일 성한 편이었다. 문턱은 아예없었고 문짝 밑으로는 닭들이 노상 출입했다. 안주인이 나와 집 안도 둘러보라고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닭들이 쫓기듯이 집 안으러 들어갔다.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바닥은 대부분 흙으로 된 데다가 우중충하고 축축해서 학질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떼어내려고 하면 부스러질 것 같은 판자가 여기한장, 저기한장 깔려있었다. 안 주인은 등불을 켜서 지붕과 벽안쪽을 보여주고 마루의 판자가 침대 밑으로도 깔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더. 지하실에는 발을 디디지말라고 했는데 지하실은 2피트쯤 되는 쓰레기 구덩이 같은 것이었다. 안주인의 말대로 지붕판자와 벽판자와 창문은 쓸만했다. 창문은 원래 온전한 유리 두장이 끼여있었는데 최근에는 고양이만이 그 창문으러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이집에는 난로하나,침대하나,의자하나,갓난아이하나,양산하나,거울하나,커피가는 기계가 전부였다. 집 주인이 그동안에 돌아왔으므로 매매계약은 곧 체결이 되었다. 그날 밤 안으로 4달러 25센트를 지붕하면 그는 그다음날 새벽 다섯시에 집을 비워주되 그 동안에는 아무에게도 팔지않는다는 조건이었으며 아침 여섯시부터는 내가 소유권을 행사하기로했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에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길에서 만났다. 짐이라고는 큰 보따리 하나뿐이었는데 그 안에 고양이를 뺀 그들의 전재산(침대/커피기계/거울/닭)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에 이 판자집을 헐었다. 판자의 못을 뽑고서 수레로 몇차례 걸쳐 호수가로 날라다가 풀밭 위에 널어놓았다. 판자로 몇차례 걸쳐 호수가로 날라다가 풀밭위에 널어놓았다. 판자를 햇빛에 말려 휘어진 것을 바로잡디 위해서였다. 아침일찍 일어난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숲길로 수레를 밀었다.
나는 우드척 한마리가 굴을 팠던 남향의 언덕 기슭에서 지하 저장실을 만들었다. 옻나무와 검은딸기나무의 뿌리를 헤치면서 풀이나 나무의 뿌리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 깊이로 고운 모래가 나올때까지 파내려갔다. 사방 6피트에 7피트의 깊으로 팠는디 그 안에서는 겨울에 감자가 얼 염려가 없었다. 저장실의 측벽은 돌을 쌓아 보강하지않고 경사진 그대로 두었다. 햇빛이 들지 않으므로 모래는 허물어져 내리지않았다. 저장실을 만드는 일은 두 시간밖에 걸리지않았다. 나는 이렇게 땅을 파는 일에 각별한 즐거움을 느꼈다. 거의 어느 위도에서나 사람이 땅을 파고 들어가면 일정 불변의 온도를 얻을 수 있다. 도사의 가장 호화스러운 주택에서도 지하 저장실이 있으며 사람들은 옛날과 다름없이 거기에다가 근채 식품을 저장해둔다. 지상의 건축물이 사라지거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후세 사람들은 이 지하 저장실의 흔적을 본다. 그러고보면 아직도 집이란 땅굴 입구에 세운 일종의 현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침내 5월 초순에 이르러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서 집을 상량했다. 벽을 붙이고 지붕올리는 일이 완료되자마자 나는 입주를 했는데 그날이 7월 4일이었다. 벽의 판자들은 모서리를 비스듬히 깎아 빈틈없이 맞붙혔기 때문에 비는 조금도 새지않았다. 벽을 붙이기에 앞서 두 수레분의 돌을 호숫가에서 언덕위까지 팔에 안아 나른 후 집 한 모퉁이에 굴뚝의 토대를 쌓아올렸다. 나는 가을 내내 밭일을 하고나서 추위가 오기전애 굴뚝을 올렸다. 그 전까지는 아침 일찍 집 밖 한데서 밥을 지었는데 어떤 점에서는 이것이 더 편하고 재미있는 취사방법이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빵이 다 구워지기도 전에 비바람이 불때는 불 위에 판자 몇장을 세워놓고 그 밑에 앉아 빵을 지켜보면서 즐거운 몇시간을 보내곤했다. 그 무렵 나는 너무 바빠서 독서를 거의 하지못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한 쪽의 신문지 조각은 그것이 나가 물건를 쌌던 것이든 식탁보로 썼던 것이든 큰 즐거움을 주었다.
월든을 보면서 너무 재밌었다.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랄까. 조금 더 자발적인 리틀포레스트 같았다. 생각을 실행에 옮긴 소로우가 너무 대단하다. 집을 사서 새로 짓고 그 앞에서 밭일을 하고 자급자족을 하다니. 나도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소로우같이 3년정도 시골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들었다.
에어비앤비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때문에 집이나 인테리어도 많이 웹서핑을 하고있는데 이렇게 소로우처럼시골에 집사서 집을 개조하는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기도하다. 내집을 내가 짓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자취를 한지도 이제 8년차인데 내집마련은 커녕 내가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었다. 내집짓기도 버킷리스트에 하나 넣기 좋은 항목인 것 같다. 내가 지은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해서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낮에 그 곳에서 일하노라면 때로는 눈발이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집으러 돌아가려고 철로 변으로 나오면 선로 옆의 노란 모래는 아지랑이 속이서 번쩍이며 끝없이 펼쳐져잇고 선로 자체도 봄날의 햇빛을 받아내고 빛나고 있었다.
종달새와 피비새와 그 밖의 새들이 사람들과 함께 또 한 해를 보내고 보내려고 어느새인지 와서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흔쾌한 봄날들이 이어지면서 겨울 동안의 인간의 불만은 대지와 함께 녿아 갔으며 동면하고 있던 생명은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어느날 도끼자루가 빠져서 호두나무의 푸른 가지를 잘라와 돌로 쐐기를 박았다. 그러고는 자루가 다시 빠지지 않도록 물에 불리려고 호수의 얼음 구멍에 담갔는데, 그때 줄무늬 뱀 한 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뱀은 내가 그곳에 있는동안, 그러니까 15분 이상을 호수 바닥에 가만히 있었지만 별 불편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그 뱀이 아직도 동면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현재의 비천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약 참다운 봄의 기운이 자신을 깨운 것을 느낀다면 그들도 반드시 일어나 높고 영묘한 생활을 지향할 것이다.
나는 전에 서리가 내린 길을 걷다가 뱀을 여러번 만났는데 이 뱀은 추위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채 햇빛이 자신을 녹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초하룻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호수의 얼음이 녹았다. 그날 아침은 매우 짙은 안개가 끼었는데 외톨이가 된 기러기 한 마리가 더듬듯이 호수 위를 날면서 길을 잃은 것 처럼 또는 안개의 정령이라도 된 것 처럼 끼룩끼룩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며칠동안 나는 작은 도끼 한자루만 가지고 나무를 자르고 깎고 기둥과 서까래를 다듬었다. 남에게 전할만핟 생각이나 학자다운 생각은 별로 하지않고 홀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말하지만
보라! 그것들은 날개가 돋쳐 날아가버렸다.
모든 예술과 과학이. 그리거 무수한 발명품들이. 바람이 부는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그것뿐"
나는 하루종일 숲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항상 점심으로 버터바른 빵을 싸 가지고 갔다. 점심때에는 내가 베어낸 푸른 소나무 가지들 사이에 앉아 빵을 쌌던 신문을 읽었다. 손에 송진이 잔뜩 묻었으므로 빵에 소너무 향기가 스며들었다. 집을 다 지을 무렵 나는 소나무의 원수라기보다는 그 친구가 되었다. 왜냐면 소나무를 여러 그루 베긴했지만 이 나무를 아주 잘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숲 속을 거닐던 사람이 나의 나무조각들을 사이에 두고 즐거운 한담을 나누었다. 일을 서두르지 않고 공을 들여했기 때문에 4월 중순경이 되어서야 뼈대가 짜여 세울 준비가 되었다. 나는 이보다 앞서 판자를 쓸 생각으로 피치버그행 철도 노선에서 일하는 제임스 콜린스라는 아일랜드 사람의 판잣집울 사놓았었다. 콜린스의 판잣집은 꽤 쓸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그는 집에 없었다. 나는 집 바깥을 한번 둘러보았다. 창문이 높고도 깊숙히 붙은 까닭에 처음에 집안에서는 내가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자그마한 집은 오두막식으로 올린 뾰족함 지붕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밖에는 이렇다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않았는데 그것은 집주위를 돌아가며 퇴비더미처럼 흙을 5피트정도로 쌓아 놓았기 때문이다. 햇빛에 말라 꽤 휘긴했지만 지붕이 제일 성한 편이었다. 문턱은 아예없었고 문짝 밑으로는 닭들이 노상 출입했다. 안주인이 나와 집 안도 둘러보라고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닭들이 쫓기듯이 집 안으러 들어갔다.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바닥은 대부분 흙으로 된 데다가 우중충하고 축축해서 학질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떼어내려고 하면 부스러질 것 같은 판자가 여기한장, 저기한장 깔려있었다. 안 주인은 등불을 켜서 지붕과 벽안쪽을 보여주고 마루의 판자가 침대 밑으로도 깔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더. 지하실에는 발을 디디지말라고 했는데 지하실은 2피트쯤 되는 쓰레기 구덩이 같은 것이었다. 안주인의 말대로 지붕판자와 벽판자와 창문은 쓸만했다. 창문은 원래 온전한 유리 두장이 끼여있었는데 최근에는 고양이만이 그 창문으러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이집에는 난로하나,침대하나,의자하나,갓난아이하나,양산하나,거울하나,커피가는 기계가 전부였다. 집 주인이 그동안에 돌아왔으므로 매매계약은 곧 체결이 되었다. 그날 밤 안으로 4달러 25센트를 지붕하면 그는 그다음날 새벽 다섯시에 집을 비워주되 그 동안에는 아무에게도 팔지않는다는 조건이었으며 아침 여섯시부터는 내가 소유권을 행사하기로했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에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길에서 만났다. 짐이라고는 큰 보따리 하나뿐이었는데 그 안에 고양이를 뺀 그들의 전재산(침대/커피기계/거울/닭)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에 이 판자집을 헐었다. 판자의 못을 뽑고서 수레로 몇차례 걸쳐 호수가로 날라다가 풀밭 위에 널어놓았다. 판자로 몇차례 걸쳐 호수가로 날라다가 풀밭위에 널어놓았다. 판자를 햇빛에 말려 휘어진 것을 바로잡디 위해서였다. 아침일찍 일어난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숲길로 수레를 밀었다.
나는 우드척 한마리가 굴을 팠던 남향의 언덕 기슭에서 지하 저장실을 만들었다. 옻나무와 검은딸기나무의 뿌리를 헤치면서 풀이나 나무의 뿌리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 깊이로 고운 모래가 나올때까지 파내려갔다. 사방 6피트에 7피트의 깊으로 팠는디 그 안에서는 겨울에 감자가 얼 염려가 없었다. 저장실의 측벽은 돌을 쌓아 보강하지않고 경사진 그대로 두었다. 햇빛이 들지 않으므로 모래는 허물어져 내리지않았다. 저장실을 만드는 일은 두 시간밖에 걸리지않았다. 나는 이렇게 땅을 파는 일에 각별한 즐거움을 느꼈다. 거의 어느 위도에서나 사람이 땅을 파고 들어가면 일정 불변의 온도를 얻을 수 있다. 도사의 가장 호화스러운 주택에서도 지하 저장실이 있으며 사람들은 옛날과 다름없이 거기에다가 근채 식품을 저장해둔다. 지상의 건축물이 사라지거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후세 사람들은 이 지하 저장실의 흔적을 본다. 그러고보면 아직도 집이란 땅굴 입구에 세운 일종의 현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침내 5월 초순에 이르러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서 집을 상량했다. 벽을 붙이고 지붕올리는 일이 완료되자마자 나는 입주를 했는데 그날이 7월 4일이었다. 벽의 판자들은 모서리를 비스듬히 깎아 빈틈없이 맞붙혔기 때문에 비는 조금도 새지않았다. 벽을 붙이기에 앞서 두 수레분의 돌을 호숫가에서 언덕위까지 팔에 안아 나른 후 집 한 모퉁이에 굴뚝의 토대를 쌓아올렸다. 나는 가을 내내 밭일을 하고나서 추위가 오기전애 굴뚝을 올렸다. 그 전까지는 아침 일찍 집 밖 한데서 밥을 지었는데 어떤 점에서는 이것이 더 편하고 재미있는 취사방법이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빵이 다 구워지기도 전에 비바람이 불때는 불 위에 판자 몇장을 세워놓고 그 밑에 앉아 빵을 지켜보면서 즐거운 몇시간을 보내곤했다. 그 무렵 나는 너무 바빠서 독서를 거의 하지못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한 쪽의 신문지 조각은 그것이 나가 물건를 쌌던 것이든 식탁보로 썼던 것이든 큰 즐거움을 주었다.
월든을 보면서 너무 재밌었다.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랄까. 조금 더 자발적인 리틀포레스트 같았다. 생각을 실행에 옮긴 소로우가 너무 대단하다. 집을 사서 새로 짓고 그 앞에서 밭일을 하고 자급자족을 하다니. 나도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소로우같이 3년정도 시골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들었다.
에어비앤비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때문에 집이나 인테리어도 많이 웹서핑을 하고있는데 이렇게 소로우처럼시골에 집사서 집을 개조하는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기도하다. 내집을 내가 짓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자취를 한지도 이제 8년차인데 내집마련은 커녕 내가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었다. 내집짓기도 버킷리스트에 하나 넣기 좋은 항목인 것 같다. 내가 지은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해서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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